2016년 1월 30일 토요일

공감능력


어렸을때 처음으로 상가집에 방문했을때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흠.....생각했던 것 만큼 슬프지 않은걸???"

그리고 주변에 울먹이거나 눈가에 붉은 기운을 가진 이들을 보면서

내가 냉혈한인가.... 공감감각이 없나... 하는 생각....


또 다른 경험으로

첫 아이가 태어난다

와이프는 병실에서 연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고 참아가며 그 긴 시간을 버틴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러고 있다는 것에 만감이 교차하고

"젠장....애를 왜 가지게 해가지고..."  라는 생각까지 들 수 있따  -.-;;

아이가 태어나고

그 시뻘겋고 산도를 나오느라 찌그러지다시피한 콘해드 를 보면서

"웅??? .... 이건뭐지?....  들은것 보다 그다지 기쁘지 않은걸?"



공감능력  영어로 Empathy 라고 쓰고 역으로 사전을 찾아보면 "감정 이입" 이라고 한다.

공감능력이 결여된 범죄자를 "사이코 패스"라는 부르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공감감각이 들지 않는다고 내가 사이코 패스라는 이상한 논리를 만들어내면 안된다.

중간에 빠진게 있다.



상가집의 케이스에서는

그 상가집이 그리고 그 영정의 사진의 상대가  내가 아니기 때문이 첫번째 이다.

사실 내 얼굴이 영정에 있다면 내가 조문을 갈 일도 없으니  공감을 할 필요도 없겠다


출산에서는

아이를 낳고 있는 "너"가 있고

남자세끼 입장에서는 처음만난 "그" 또는 "그녀" 가 있다

아직은 "그"가 "너"로 까지 가까워지지 못했다.

엄마야 뱃속에서 이미 "너" 이상의 가치를 공유했겠지만

남편세끼들은 그런척 하기는 한다만  내가 장담하건데.... 뻥까지 마라

나같이 좀 떨어지는 남자들의 정은 살면서 만들어진다.

(아...미안하다... 공감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이미 그 아이도 아래 이야기 할 "너" 라고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_)


그리고 두번째로 "너" 가 있다.

우리는 가족끼리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 친근하게 부를때 "너" 또는 "당신" 라고 부른다

영어로   you  인데... 한글의 훌륭함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상대방을 지칭하는 그 무수한 단어와 어휘들을 보라....아름답다


아이가 아프다... 쬐그만게 열은 39나 되고 작게 끙끙거리기 까지 하는데

도무지 어떻게 아프고 힘든건지 알 수 가 없다.

그리고 엄마아빠들은 연신 어쩔 줄 몰라하며 책을 뒤지고 인터넷을 찾아보고

하나하나 배워간다

잠을 잘 수 가 없다.

신경쓰이고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지만... 단어로 형상화 시키기도 힘들지만

그 아이의 아픔과 힘듦에 "이입" 하게된다.


와이프가 고기를 썰다가 칼로 손을 배었다.  잉잉거리면서 손가락을 쥐고 있는걸

"손치워!  에그 칠칠 맞게!!!" 타박을 하면

와이프의 얼굴을 스치는 졸라 섭섭한 표정도 읽어 볼 수 있다.

그건 두번째 치고

그래서 손을 치우고 상처를 보는 순간

매끄러운 절단면 사이로

봉긋하게 솟아올라 순간 주르륵 흘러 내리는 피를 보게 된다

순간 당황하게 되고, 인상을 찌푸리며

좀전에 가졌던 (칠칠맞게 보았던)감정에 미안해 진다

이렇게 상대방의 감정과 아픔에  내 감정이 동조되었을때 "감정이 이입 되었다" 라고 한다


세번째로 "그사람" "그" "Other" 가 있다.

프랑스파리에서 폭탄이 터져 사람들이 죽어나갈때
- 최근에 한번 이였지만 프랑스는 해외 망명자를 조건없이 잘 받아주기로 유명하다. 시민사회의 자긍심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테러와 암살이 난무했고 항상 첩보영화에 프랑스가 나오는 이유가 에펠이 있어서 그런게 아니라 워낙 테러가 많았던 나라다-

정말 감정이 흔들렸는가?

나는 아니다. 그저 "아....쫌 안됬다...나쁜세끼들"  요정도다

왜?

그 테러로 죽어간 사람이

"너"가 아니라 "그"도 아니고 더군다나 "그들" 이였기 때문이다

혹시나 대량 사상자가 발생한 사회적 이슈에 감정이입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신을 탓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이유는 좀 있다가)


우리는 많은 "너" 를 가지고 있고

없더라도 "너"를 가지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당신도 "너"를 잃었을때의 상실감을 배우게(?) 되는 날이 올것이니 걱정하지 말자


이렇듯

공감능력이 발휘되는 대상은  "너" 라고 부르는 사람으로 특정된다

그렇다면 대체 "마더 테레사" 같은 분들은 뭘까?

그래서 성인이라고 부르는것이 아닐까 싶다

범인들은 그저 "그들"로 보는 대상을  "너"로 인지하고 그 아픔에 감정이입을 하고

그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는 능력자 되시겠다....


각설하고

나는 절대,,  never   앞으로도

불특정하게 대상을 "너"로 보고 싶지 않다

"너"의 상실감은 너무 아프다

한번이라도 절절하게 좋아하던 사람과 해어져 봤거나

사랑하던 부모(사랑하던!)를 떠나 보내거나

일반적으로 인간은 여하간의 경험을 통해서 그때서야 안다 (감정도 학습이다.)

"부재의 고통"을


상대방을 "너"로 인지 하는 메커니즘은 내 마음대로 통제 되지는 않는듯 하다

시간이 지나고 같이 하는 경험을 통해서 "너"가 되어지고

학습된 감정에 따라서는 같이 지내지 않았더라도

그러한 상황이 주어지고 감정이 들어가면 "그들"도 "너" 가 될 수 있다.



세월호의 예를 들어

회사 점심시간에 식당에 앉았을때

MBC 뉴스에서

"배 졸라 큰거 하나 가라앉았는데 몇백명이나 있다. 근데 구조는 다 했데"

라고 했을때 나의 감정선은 흔들린적이 없다

"뭐....저 큰 배가 뭔짓을 했길래 저리 됐나??" 싶었고

재주행 배를 몇 번 타본 나로써는(탑승객 겁나 많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 짧은 시간에 다 구했다니 다행이라는 정도



시간이 지나고

첫 감정의 울림은

"학생" "325명" "고2"  라는 키워드에서 였다

내 아들이 중2다... 같은 나이는 아니지만 비슷한 10대라고 치고....

그때부터 감정선이 흔들리면서 인터넷을 찾아보았고

"그들"로 불리고 "325명"으로 표현되던 아이들의 사진 325장을 넘기면서
(사실 한 100장 넘기니 덤덤해 져버려서 그만 뒀다)

"그들"이 "너"에 가깝게 들어왔다


그에 따르는  분노, 상실감, 나에게도 그런일이 생길까의 두려움 등이 복잡하게 얽히고

그 감정은 아직 해결 되지 않는 세월호의 일을 바라보게 만들고

4월 16일이 되면 인터넷을 뒤지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이렇듯 공감능력은 학습된다.

그리고 그 학습은  사람의 경험이고

부모가 어떤 사랑을 배풀어주었는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결이 만들어진다.

사람은 고민한 만큼 행동하고, 행동한 만큼의 경험이 쌓일 뿐이다.


그래서

별 생각없이 사는 사람들과

절대적인 지식이 부족한 경우 공감감각의 결여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살아온 가정환경이 형벌의 수위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 자체를 무조건 잘못이라고 하면 안된다.

예를 들어 20대 사회 초년생의 경험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겠는가

첫 연애에서 경험없는 둘이서 무슨 사랑을 논할까
(시간이 지나 성숙하면 반추해서 해석할 뿐)

개인의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절대적인 삶의 시간과 그에 따라 사건(학습을 위한필수전제)의 갯수가 적을 뿐이다

집에 돈도 없고 빽도 없어서 평생 하루벌어먹고 사느라 바쁜사람이라면 또 어떠한가


문제는

알만큼 알고 살만큼 살고

대충 평타치고 사는 사람들이

나이먹고 시간 지나서 지들이 "어른" 이라고 대접 받으려고 할때 발생한다.


공감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자

아픔이 있는 사람들은 더욱 힘들어졌고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기업의 오너인 회사의 직장인은

짐짝 취급을 당하며 자기존중감이 결여되어 가게 된다.


결국 "공감각각"을 결여는 "미성숙" "인성부족"과 한 맥락에 있다

경험이 모자라고 생각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을 경우도 있으나

분명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감하지 못하고

그 경험을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이용해 먹는

개세끼들이 분명히 사회에 존재 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간다.


남자들은 군대 이야기 하면 잘 알아먹는다

박상병에게 맞아가며 군생활을 시작한 권이병이 있는데

권이병이 권상병이 되었을때

새로 들어온 김이병에게

당한만큼 하는 사람이 있고  당했기에 안하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내가 아프면 다른사람도 아프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고

후자는 그 아픔을 후임에게 주기 싫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이병이 "너" 가 되는 순간이다.



회사에서도 별반 다름이 없다.


지식을 쌓아 올리느라

공감감각이라고는 말라비틀어진 건포도 같아진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럼 이런 공감능력을 트레이닝 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면

역시 "경험"이다

경험이라는 것은 "사건"을 대하고 그 사건을 해결해 가면서 축적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회경험"을 좀 해보면 철이 들꺼라고 한다

근데 말이지....

그 사회경험이라는게 보통 아까 이야기한 공감감각이 떨어지는

꼰대 씨발놈들이 워낙 포진하고 있어서 "더.럽.거.든"

회사는 훌륭한 곳으로 가야 한다

큰 회사가 훌륭한 곳이 아니라  사람이 좋은 회사를 가야한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을 선호하는 이유가 "안정성"을 이야기 하는데 나는 조금 다르다

기업이 크고 학력을 따지고 일이 많은 회사일 수 록

"경험이많은" 상사가 존재할 가능성이 확률상 높다.

그래서 나 역시 첫 직장으로 능력만 된다면 스케일이 큰곳에서의 경험을 권장한다.

짬빱이 올라가면 보는 눈이 생기고 그럼 대기업 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좋은데 찾으면 된다.


물론 아까 적었듯이 "경험이 많다" 라고 해서 이를 개인의 영달을 위해 써먹는 놈들이 없으라는 법이 없다

다시 말하자면 "확율 게임"이다. 좃 같은 놈을 만났다면 너님의 쌕복(쎄복)이다


이런 확율게임에서 되도록 자기 주도적으로 사건을 경험 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여행"이 있겠다

여행은 내가 준비해서 떠난다.

강제 여행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그런건 없다

아마도 가족여행이라고 부르는 정도가 될 것 같은데

나는 그런 것은 "여행"의 범주에서 퇴출 시켰다

가족과의 여행은 그냥 "봉사활동" 또는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들어서 그 행복을 내가 느끼기 위한 돈지랄" 정도로 설명한다.
(오해 말자 나두 가족여행 자주 간다. 나쁘지 않다. 다만 지금 쓰는 글의 내용상 여행의 의미를 좀 더 세분화했을 뿐이다.)

사람들이 여행을 간다고 하면 반응은 뻔하다

다녀와도 식상한 질문의 연속이다

특히나 그중에

"넌 가서 무엇을 배워 왔니?" "나는 나를 찾으러 떠나요"

으흠.... 좀 더 다니시라....다음에는 좀 더 몸이 힘든 여행을 추천한다.

지리산 종주,  산티아고순례길 그런거 추천한다.


혼자 여행을 떠나본 사람은 안다

여행은 사건의 연속이다. (여행을 가면 결국 사람을 만나거나, 못만나는게 사건이다)

이상한 세끼를 만나서 돈을 털릴 수 도 있고

잠잘곳 먹을곳을 못 찾으면 한두끼를 꼬박 굶어가며 다닐때도 있다

신경쓸 사람이 없으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되고 그러한 사건은 하나하나의 배움이 된다.

앞서 말한 경험을 통해 만나는 사람과의 사건을 해결해 가는 방법을 배우고

그 배움을 통해서 자신을 성숙시키는 재료로 쓸 뿐

그 경험이 당장의 훌륭함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회사의 후배들에게 권한다.

회사를 다녀라... 다만 여행다니듯 다녀라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여행자들이 강제하지 않아도 모여서 같이 있을때

즐거운 동행이자 그룹이고 그들고 같이 하는 여행이 행복한 여행이라고.....



좀 더 다른사람의 감정을 잘 알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상대방을 만족 시킴으로써 내 만족도 찾을 수 있다는 것과

내가 나를 만족 시키는 것 보다 전자가 훨씬 쉽다는 것을 빨리 알아내길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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